티스토리 뷰

대증요법과 자연치유력의 차이점을 알아보겠습니다. 현대의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증요법의 단점과 대증요법이 자연치유력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대증요법과 자연치유력의 차이

 

근래 사람들은 자연치유력을 이야기하면 우습게 넘깁니다. 그런 것이 어딨 냐며 안 믿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걸 자연스러워합니다. 그걸 반대하지 않습니다. 당장 죽을 위기라면 대증요법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아직 현대 의학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에 난무한 대증요법으로 인해 오히려 병은 늘어나고 환자는 매년마다 증가합니다. 과연 대증요법이 모든 질병의 답일까요? 그 해답을 자연요법을 추구하는 동종요법에서 일부 해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증요법은 다르다(allo)와 병(patheia)을 조합한 말로, 병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요법이든지 그 바탕이 동종의 원리에 있는지, 대증의 원리에 있는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증요법은 내부에 부자연스러운 것을 지닌 채 생명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방법입니다. 증상을 내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는 방법으로 지금의 현대의학이 대증요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대증요법

대증요법은 증상의 원인에 대한 통찰보다는, 쉽고 빨리 치료하는 편안한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증요법의 발달이 사람의 정신과 몸을 보다 약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약을 먹으면 일단은 증상이 사라지므로 사람들은 약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대증요법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증상에 책임지는 쪽보다는 책임을 피해 대증요법 의사와 약에 정신적으로 기대는 것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대증요법은 병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진실과 마주 보기 싫은 것이고 자신에게는 좋은 도피처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 호소합니다. 대증요법으로 약을 먹으면 아픈 증상이 마법처럼 짧은 시간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을 먹음으로써 증상이 나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은 게 아니라 덮은 것일 뿐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다시 증상은 나타납니다. 그것이 대증요법의 치료 방법입니다.

 

병을 바깥에서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세균이 나쁘다. 바이러스가 안 좋다...'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들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아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는 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에 대한 원인을 찾았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 고혈압의 원인을 찾았다고 해도 그것이 과학으로 억누르는 것이라면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설령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다른 병원체가 반드시 다른 쪽으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대증요법의 치료 방식이 증상을 덮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의 흐름을 막는 곳에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흐름을 막힌 곳에 벌레가 끓고 분해자가 흙에 돌려주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런 현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만약 밖으로 드러나는 어떤 증상도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부의 자극을 알 수 있을까요? 내부자극은 서서히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내부의 악마는 고통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천사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동종요법의 약은 대부분 독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종요법의 약으로 만들어진 독은 훌륭한 치료제입니다. 

대증요법의 치료방식

현대의학으로 대표되는 대증요법의 치료방식은 주로 증상에 저항하는 약을 먹거나, 수술로 절제하거나 덮는 방식으로 해결됩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이 발전했다고 하는데도 환자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난치병도 늘어나고만 있습니다. 대증요법이 병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증상에 승리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대증요법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 한, 내부의 병은 치료되지 않습니다. 병은 사라지지 않고 숨어있다가 또 다른 증상으로 표출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증상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의학이 끊임없이 발달해도 환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증상을 탄생시킬 뿐입니다. 증상을 계속 누르면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생명력이 균형을 유지합니다. 머지않아 그것이 당연한 일상으로 됩니다. 몸의 변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즉, 몸의 어딘가에 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병의 책임은 자기 스스로 져야만 합니다. 병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치유력

현대의학이 아니, 대증요법이 만약 분자 수준에서 모든 증상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것을 빼앗김을 뜻합니다. 증상이란 자연치유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힘입니다. 그런 증상을 강제로 막아버린다면 자연치유력을 막아버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연치유력은 말 그대로 스스로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는 힘입니다. 본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되찾으려는 의지입니다. 즉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자연스럽게 돌아오려고 병을 내쫓는 힘입니다.

 

증상은 생명력의 흐름이 막혀 있을 때 나타납니다. 부자연스러운 패턴의 생명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습니다. 이러한 패턴에 동종의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공명, 증폭시킵니다. 또한 동종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그러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닭게 해줍니다. 동종요법 치료자는 동종의 파동을 보내 깨달음에 도움 주고 있습니다.